14.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법에 관한 말씀

504)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변화된다.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델과 표본이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으며,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들에게 한 요구는 바로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사역을 알라는 것이요,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사역과 사람을 정복하는 모든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증거야말로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사탄을 수치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고 그를 알게 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하고, 성품 변화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바라지 않고, 그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부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성품이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505) 사람은 성품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건성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을 받아야 성품에 다소 변화가 보인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책망을 겪은 사람만이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침착하며 진중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을지라도 관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말한 성품 변화란 주로 자신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즉, 육신이 고난받고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며 육적인 취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도 성품 변화의 일면이다. 지금은 모두 성품 변화의 실제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현재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새 사역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갖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태까지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인식을 벗어던져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품 변화의 참된 모습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506)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본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의 사상, 본성, 정신 면모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성품이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생긴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에게 미혹되고 패괴되고 해를 입었고, 사람이 이미 사탄에게 얽매이고 통제되어 사람의 사상, 도덕, 식견, 이성이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근본적인 것들이 이미 모두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이 만든 원래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우선 사람의 사상, 식견, 이성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진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507)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되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계와 매가 떠나지 않게 함으로써 사탄의 지배와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빛임을, 사람을 구원하는 빛이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축복이며, 가장 큰 은혜이자 가장 좋은 보호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육으로 살면서 정결케 되지 못하고 보호를 받지 못하면 점점 타락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정결케 되어야 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대하실 때 저는 기쁨과 위안을 얻었으며, 저를 형벌하실 때는 제 마음에 더 큰 위안과 기쁨이 있었나이다. 비록 제게 연약함과 말 못 할 고충이 있고 또 눈물과 슬픔이 있지만, 당신은 제 슬픔이 저의 패역과 연약함 때문임을 아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없어 울고, 당신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슬퍼하고 통회하나이다. 하지만 저는 그 경지에 이르기를 원하고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의 형벌은 저에 대한 보호이자 가장 좋은 구원이 되었나이다. 당신의 심판은 당신의 포용과 인내를 뛰어넘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저는 당신의 긍휼과 자비를 누릴 수 없나이다. 지금에 이르러 저는 당신의 사랑이 하늘보다 더 높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사랑은 긍휼과 자비일 뿐만 아니라 형벌과 심판이라는 것을 보았나이다.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아무도 정결케 될 수 없고, 아무도 창조주의 사랑을 체험할 수 없나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08) 네가 온전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온 힘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네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은 것이냐? 네 마음가짐이 옳으냐? 네 마음가짐이 옳다면 하나님은 너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네 마음가짐이 옳지 않다면 이는 네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을 사랑하고 사탄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한다. 기도할 때 나, 이 사람은 네 눈앞에 없지만 성령이 너와 함께한다. 네가 기도하는 대상은 나, 이 사람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이기도 하다. 네가 이 육신을 믿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네가 이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느냐? 네가 이 사람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다. 너에게 이 사람을 경외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경외하라는 것과 같으니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 곧 이 사람을 믿는 것이요, 이 사람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이 너와 함께하고 하나님이 바로 네 눈앞에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을 향한 기도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한 일을 하나님 앞에 내놓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의 육신을 속일 순 있어도 하나님의 영을 속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감찰을 통과할 수 없는 일은 모두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마땅히 내던져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기도할 때든, 형제자매와 대화하고 교제할 때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일을 처리할 때든 마땅히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네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때 하나님은 너와 함께한다. 네가 마음가짐이 바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일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네가 한 일을 열납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진심을 다해 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구해라. 이러한 마음이 있다면 기도가 결실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에서 기도할 때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거짓을 고하지 않고 네 속마음을 하나님께 털어놓는다면 반드시 결실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하나님께 맹세해라. “천지 만물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여! 당신께 맹세합니다. 당신의 영이 언제나 제 모든 행동을 감찰하고, 언제나 저를 돌보며 보호해 주십시오! 저의 모든 행동이 당신 앞에서 굳게 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배반한다면 제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고 저주하사 금세에도 내세에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게 하십시오!” 너에게는 이렇게 맹세할 용기가 있느냐? 이렇게 맹세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용기가 부족하고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너희에게는 이러한 의지가 있느냐? 진실로 이런 의지가 있다면 이렇게 맹세해야 한다. 이러한 의지를 갖추고 하나님께 맹세하면 하나님은 네가 품은 의지대로 이루어 줄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맹세하면 하나님은 귀를 기울일 것이며, 네가 기도하고 실행한 것에 따라 네가 죄인인지 의인인지 정할 것이다. 지금은 너희를 온전케 하는 과정에 있다. 네가 진정으로 온전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한다. 만약 네가 대역무도한 일을 저지르거나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맹세한 대로 ‘이루어 줄’ 것이다. 그때 네가 침륜되든 형벌을 받든 그것은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맹세를 했다면 그 맹세대로 실천해야 한다. 맹세하고도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너는 침륜의 대상이다. 네가 말했으니 하나님은 네 맹세대로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기도를 마친 뒤 두려움에 떨며 이렇게 말한다. “큰일 났어! 이제는 방탕한 생활을 할 기회도, 나쁜 일을 할 기회도, 세상을 탐하고 연연해할 기회도 다 사라져 버렸다고!” 이런 사람은 아직도 세상과 죄를 사랑하고 있으니 앞으로 틀림없이 침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 중에서

509)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법칙이 있다. 즉, 취할 만한 부분을 통해 깨우침을 줌으로써 실행의 길을 열어 주고, 모든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영이 해방되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데, 이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게 한다. 네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알려고 하며, 진리를 실행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너를 축복해 줄 것이다. 또한, 네가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될 때 너를 더 깊이 깨우쳐 스스로를 더 잘 알게끔 하고, 자신을 더욱 뼈저리게 뉘우치며, 자신이 실행해야 할 것을 더 잘 실행하게끔 할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된다. 평소에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설령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양심이나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바로 돌려세울 수 있다. 사람의 성품은 모두 자신의 실제 상태,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깨달을 때 변화한다. 자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 자기 속내를 다 털어놓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깊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이자 사람이 얻은 것으로, 사람 자신이 거둔 성과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기틀이 잡히고, 이상(異象)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육신, 말씀, 사역에 대해 확신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고 말씀하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교란하든 자신의 주관을 세우고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더욱 잘 실행한다. 항상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다 보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원히 증거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510)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품이 변화하려면 실생활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실생활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저버리며,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또한, 범사에 처신의 원칙과 상식, 규범을 배워야만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네가 도리상의 인식만을 중요시하고 종교 의식 속에서만 생활할 뿐, 실제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실생활에 진입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실제에 진입할 수도, 자신에 대해, 진리와 하나님에 대해 알 수도 없을 것이며, 언제까지나 눈멀고 무지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단기간 내에 정상인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며, 틀린 관념이나 도리를 바꿔 놓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옛 성품과 모든 옛 생활, 사람의 뒤처진 사상과 정신적인 면모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교회 생활만 중요시해서는 사람의 낡은 생활 습관이나 오래된 생활 방식을 바꿔 놓을 수 없다. 사람은 어쨌든 실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교회 생활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도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 또한, 교회 생활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도 진리를 살아 낼 것을 요구하고, 교회 생활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에 진입하려면 모든 것을 실생활로 향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생활에 진입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생활 속에서 정상 인성으로 살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실패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모두 실생활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고, 하는 말은 인간성이 있어 보이나 귀신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이며, 입술에만 진리가 있을 뿐 이론으로 사는 사람이다. 실생활 속에서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림받은 사람이다. 너는 실생활 속에서 진입하는 훈련을 하고, 자신의 부족함과 패역, 어리석음, 비정상적인 인성, 연약한 면 등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너의 실제 내적 상태와 실제 어려움에 결부해야 한다. 그래야 너의 인식이 실제적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내적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어 성품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교회 생활과 실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511)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기도하는 훈련을 하며, 하나님의 부담과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네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부탁에 부담을 가질수록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가 더 쉬워진다. 혹자는 일어나서 협력하며 섬기라 해도 싫어하는데, 그런 자는 게으르고 안락을 탐하는 사람이다. 네가 일어나 협력하며 섬길수록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너의 부담과 체험이 많아지기 때문에 온전케 될 기회 또한 많아진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도 많아진다. 지금 이런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있다. 성령이 너를 갑절로 감동시킬수록 너는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때가 많아지고, 하나님께 더 많이 온전케 되고 얻어져서 마침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태만하게 굴며 자신의 육체만을 생각하는데, 그런 자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눈먼 사람이다. 네가 이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부담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헤아릴수록 하나님이 네게 더 많은 부담을 더해 줄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그러한 고생을 하는 것도, 대가를 치르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놓치게 되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대한 참된 부담을 가질 것이다. 사실,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갖는다고 하기보다는 너 자신의 생명에 부담을 갖는다고 말하는 게 낫다.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갖는 것은 그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생명 진입에 대해 부담을 갖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분명히 이해했느냐? 네가 속한 교회가 엉망진창인데도 전혀 애타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하는데도 본체만체한다면 이는 부담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땅히 지금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해야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 만인에게 드러난 후에 생각하려 해선 안 된다. 그때가 되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지금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좋은 기회다. 만약 네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마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가 평생의 한으로 남아 후회하며 죽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만민에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너를 형벌하지 않아도 후회로 인해 너 스스로 자신을 형벌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인정하지 못하는데, 못 믿겠거든 기다려 보아라. 어떤 자들은 바로 이 말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너는 이 말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싶으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 중에서

512) 성령은 각 사람에게서 가야 할 길이 있고, 모두에게 온전케 될 기회를 준다. 부정적인 것을 통해 네가 자신의 패괴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에서 벗어남으로써 실행의 길을 찾게 한다. 이러한 것 전부가 너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또한, 긍정적인 것들을 통해 네 안에서 계속 인도하고 빛 비춰 줌으로써 네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게 하며, 식견을 넓히고 분별력을 키우게 한다. 상태가 좋을 때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기도를 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되고, 설교를 들을 때도 자기 상태에 결부시킬 수 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이 네 안에서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고 네가 긍정적인 면에서 깨닫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부분에서 너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상태일 때 너는 연약하고 소극적으로 변하며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네게 빛 비춰 주어 실행의 길을 찾게 한다. 네가 거기에서 벗어나면 부정적인 부분에서 온전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것을 통해서도, 부정적인 것을 통해서도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 결과는 네가 체험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하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다. 네가 정말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한다면 부정적인 부분에서 해를 입지 않을 것이고, 더욱 실질적인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고, 자신의 실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이런 것을 알 수 없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너는 예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행사였고 보호였음을 깨닫게 된다. 시련에 직면하는 순간 사랑과 믿음이 사라지고, 기도가 부족해지며, 찬양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나님은 다양한 환경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루며, 또 다양한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을 책망하는 한편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며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을 모조리 파헤치고 밝힌다. 수많은 내적 상태를 폭로함으로써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를 통해, 또한 책망, 연단, 형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이 매우 실제적임을 알게 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513) 현재 너희가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이다. 너희에게 닥치는 모든 사람, 일과 사물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어떠함을 너희들 안에 더 많이 만들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땅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아야만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고 많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너희가 추구해야 하고, 너희가 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이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수록,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일에서 하나님 말씀의 어떠함에 진입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저 죄를 짓지 않고 관념과 처세 철학, 사람의 뜻이 없는 그런 소극적인 내적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모든 일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에서도 온전케 하여 더 풍성히 얻게 할 수 있다. 날마다 온전케 될 기회가 있고, 하나님께 얻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얼마 동안 체험하면 너는 크게 변화할 것인데, 과거에 깨닫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지금은 자연히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또 사람이 가르쳐 줄 필요 없이 너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너에게 깨우침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모든 일에서 깨우침을 얻게 되고, 모든 체험에서 세부적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너를 인도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 너희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일에서 체험할 줄 알아야 하고, 닥치는 모든 일에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닥칠 때마다 너는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이 이로움을 얻어야 하고,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찌 되었든 너는 하나님 편에 서서 일을 바라보아야 하며, 사람의 관점에서 분석하거나 연구해서는 안 된다(이것은 체험상의 편차다). 이 방법에 따라 체험한다면 너의 마음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가득 차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빛 속에서 살면서 실행할 때 쉽게 편차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앞날이 매우 밝다.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는 매우 많다. 다만 너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너희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을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너희는 의지만 있어서는 안 되며 많은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실행할 때마다 편차가 생기게 된다. 하나님은 너희 모두를 온전케 하기를 원한다. 지금 보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지 이렇게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데만 국한되어 있다.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육적인 평안을 얻기만 바랄 뿐 더 많고 더 높은 깨우침은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아직도 늘 겉면에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사람의 사역, 사람의 섬김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순물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으나, 사람 내면의 본질과 사람의 뒤떨어진 사상을 볼 때 여전히 육적인 평안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조건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아직도 속되고 부패하며,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믿는 것을 전혀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고,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해 믿는 것처럼 대충대충, 건성으로 대하며 그날그날 되는대로 살아갈 뿐이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하고자 노력하여 더 많고 더 풍성한 것을 얻음으로써 오늘날 하나님 집에서 더 부유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더 많은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만일 네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자 하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깨우침 받기를 추구하고 허송세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자격과 조건을 가질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 중에서

514) 성령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더욱이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에게 역사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네게 역사한다면 너는 체험할 것이고,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역사한다면 너는 빨리 따라야 할 것이다. 현재의 빛을 따를수록 생명은 더 자란다.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이 역사한 것이라면 너는 따라야 한다. 네가 체험하는 가운데 그의 체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면 더 높은 것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요, 생명이 성장하는 경로이다. 너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함으로써 온전케 되는 길에 이를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할지 모르고,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을 통해 너로 하여금 얻게 하고 깨달음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고,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의 앞날이 어둡고 암담하다는 뜻이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서면 모든 일에서 계시를 얻을 수 있다.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계시해 주든 네가 그의 인식에 따라 체험한다면 그것은 너의 생명이 될 것이다. 또한 너는 그 체험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남의 말을 흉내 내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이는 체험이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이 얻은 빛 비춤과 깨우침에서 실행의 길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뒤에 자신이 실제로 체험한 것과 깨달은 것을 말한다면 자신의 생명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너는 이렇게 체험하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에 순종하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공과를 배워 너의 생명이 자라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가장 빨리 성장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515) 너는 진정으로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육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극적이거나 연약해지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하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한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와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간사한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고, 침륜의 자식이자 멸망의 자식이며, 하나님이 아닌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 너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없고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을 수 없다면 이는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성품 변화에 주력해야만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길 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 순종해야 하며, 아무 원망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역을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단정 짓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은,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바로 너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너의 마음가짐이 옳기 때문에, 네가 한 일이 옳든 그르든 용감하게 내놓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형제자매에게 보여 주며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의 모든 속마음과 생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고 진입한다면 네 생명은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516) 하나님께 쓰임 받고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고난받겠다는 각오, 믿음, 인내, 순종 등 모든 측면의 진리를 다 갖춰야 하고,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고, 하나님의 슬픔과 고심 등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단이 닥칠 때마다 너의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줄만 알아서도 안 된다. 많은 것을 갖추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육을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모습을 감추었을 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갖고 예전의 사랑도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고, 차라리 자기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닥쳤을 때 고통을 참으며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사랑과 믿음이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너는 우선 고난받겠다는 각오와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육을 저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개인적인 이익에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또 스스로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했더라도 지금은 스스로 통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한다. 네가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온전케 될 수 없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517) 성품 변화는 주로 인간의 본성적 변화를 가리킨다. 본성적인 것들은 표면적인 행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존 가치와 생존 의의, 사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직접 관련되고, 영혼 깊은 곳의 것들, 사람의 본질과 관련된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러한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진리에 완전히 진입하여 생존관과 가치관, 인생관이 모두 바뀌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충성할 수 있어야만, 성품이 변화된 것이다. 현재 네가 표면적으로 어느 정도 공을 들여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고난을 겪을 수 있으며, 상부의 사역지침을 시행하거나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어느 정도 순종이 있지만, 네 관념과 다른 일이 닥치면 또다시 거역한다. 예를 들어,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순종하지 않고,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닥치면 더더욱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따라서 겉면의 그 정도의 순종이나 변화는 그저 행위상의 변화로, 어느 정도 변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성품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너는 많은 길을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고 많은 고난과 큰 굴욕을 참을 수 있으며, 하나님과 매우 가까워졌다고, 성령도 네게 역사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네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요구하면 너는 여전히 순종하지도 못하고 이유를 대거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다. 심할 때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께 대항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네 본성은 그대로이고,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생명 성품에 조금의 변화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교체되거나 제명되면 하나님을 판단하여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말하고, 심지어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거나 반항하며 곳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불만도 퍼뜨린다.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이다. 악마 본성을 가진 자는 영원히 바뀌지 않으니 이런 자는 포기해야 한다. 매사에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리를 얻어 성품 변화를 이룰 희망이 있다. 체험하는 과정에서 겉으로 정상적인 일부 내적 상태에 대해서도 분별이 있어야 한다. 네가 기도할 때 통곡하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성령 역사가 있는 상태일 뿐이지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만약 성령 역사가 없을 때나 하나님이 하는 일이 네 관념에 맞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너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생명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며,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인식> 중에서

518) 성품 변화는 행위상의 변화도 아니고, 꾸며 낸 표면상의 변화도 아니며, 한때의 의욕으로 인한 변화도 아니다. 이런 변화가 아무리 좋아도 생명 성품의 변화를 대신할 순 없다. 이런 표면적인 변화는 사람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지만, 생명 성품의 변화는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고, 성령께 온전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 좋은 행위가 있지만,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왜 그렇겠느냐? 그것은 생명 성품이 변화되어야 이를 수 있지 행위상의 변화만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성품 변화란 네가 진리에 대해 인식하고 체험하고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어 너의 삶과 너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주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 성품이 변화된 것이다. 진리를 생명으로 삼는 사람이야말로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다. 예전에는 네가 어떤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떤 방면의 진리를 깨닫든 방해나 어려움 없이 다 실행할 수 있다. 진리를 실행하면 편안하고 즐겁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면 괴롭고 양심에 걸린다. 너는 매사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며 생존의 토대를 갖게 된다. 이러면 네 성품에 변화가 있다는 뜻이다. 네 관념과 상상, 육적인 취향, 추구처럼 예전에는 내려놓지 못한 것들을 이제는 쉽게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이 정말 좋고, 진리를 실행하는 게 제일 좋다고 느낀다. 이러면 성품이 변화된 것이다. 성품 변화는 듣기엔 무척 간단하지만, 사실 수많은 체험 과정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사람은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고 육을 저버려야 하며, 심판과 형벌의 고통, 책망 훈계의 고통, 시련과 연단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또한 여러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겪은 다음에야 사람은 자기 본성에 대해 조금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인식했다고 바로 완벽히 변화되는 것은 아니며, 기나긴 단계를 거쳐야 패괴 성품을 조금씩 벗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성품 변화는 평생 체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네가 한 가지 일에서 패괴를 드러냈다고 하자. 그걸 인식했다고 바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 인식 단계에서 누군가 너를 훈계하고 책망하며, 또 환경이 너를 압박해야 진리 원칙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사람은 마뜩잖아 ‘내가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왜 내 뜻대로 하면 안 되지? 왜 늘 나한테 진리를 실행하라고 요구할까? 난 내키지 않는데. 난 힘이 안 난다고!’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때는 늘 진리 실행을 꺼리는 것에서 진리 실행을 원하는 것으로, 소극적이고 연약한 데서 강인하고 육을 저버릴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겪은 뒤 약간의 시련과 연단을 겪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으면, 기꺼이 진리 원칙대로 행할 수 있다. 누구나 처음 진리를 실행할 때는 마지못해 억지로 실행한다. 충성을 다해 본분 이행하는 일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겠다. 네가 본분 이행, 하나님에 대한 충성에 얼마간 인식이 있고, 진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치자. 하지만 언제쯤 완전한 충성심을 갖고 명실상부하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너는 많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누군가 너를 책망하고 누군가 너를 질책하며, 모두가 너를 지켜보고 관찰해야 너는 비로소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건성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령이 내면에서 깨우쳐 네가 일을 잘못할 때 너를 질책하면, 그 과정에서 너는 스스로를 얼마간 인식하게 되고, 네 본분 이행에 불순물과 개인의 속셈, 사치스러운 욕망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것들의 본질을 인식한 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진실로 회개하면, 패괴된 것들이 정결케 될 수 있다. 늘 이렇게 진리를 구해 자신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면 조금씩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고 참된 생명 체험을 하기 시작하고, 패괴 성품도 차츰 정결케 되기 시작할 것이다.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됨에 따라 생명 성품에도 점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많지만, 본질적으로 봤을 때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성품 변화를 이룬 후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이 성찰해 보면 네 본분 이행이 기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고, 네 성품이 변화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성품 변화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행위 면에서 변화가 생겼거나, 진리에 대해 얼마간 인식이 있다고 해서 모든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거나, 징계를 겪고 얼마간 변화와 순종이 생긴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는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뤘다고 할 수는 없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느냐? 네게 얼마간 변화가 생기기는 했지만, 진정한 진리 실행에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순간 알맞은 환경이나 여건이 되기 때문에, 또 어쩌면 그 당시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밖에, 네가 기분이 좋거나 내적 상태가 정상적일 때나 성령이 역사할 때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지만, 시련을 겪는 중이라면, 욥처럼 시련으로 고통을 받거나 죽음의 시련이 닥칠 때면 진리를 실행해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겠느냐? 네가 베드로처럼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저를 죽게 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가 중시한 것은 무엇이냐? 베드로가 중시한 것은 순종이다. 그는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다. 성품 변화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며, 평생을 체험해야 이룰 수 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기는 그래도 쉬운 편이지만, 각종 환경에서 진리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과 같다. 왜 진리를 실행하는 데 늘 어려움이 있느냐? 사실 이런 어려움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모두 패괴 성품에서 비롯된 방해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할 때 반드시 많이 고통받고 대가를 치러야만 실행해 낼 수 있다. 만약 패괴 성품이 없다면 진리를 실행할 때 고통받으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냐? 간혹 겉으로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 네 행위의 본질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가정과 직장을 다 내려놓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은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한 체험 간증을 한 번도 말하지 못한다. 이게 어찌 된 일이겠느냐? 사람의 관념으로 판단하면 그들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진리 실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개인의 속셈과 불순물이 들어 있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기 쉬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행위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너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하고 기억되지 않으며 정죄될 수도 있다. 그 본질과 근원을 분석해 보면 그런 자는 악을 행하는 자로, 그런 겉면의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네가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고 파괴를 부르지도 않아 논리와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불순물과 속셈이 들어 있어 그것의 본질은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가 성품의 변화가 있는지 또는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을 하는 너의 마음가짐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한다. 사람의 상상과 뜻, 또는 너 자신의 입맛에 맞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의 뜻에 맞다고 하는지, 네가 한 일이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하는지,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달했다고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한 요구에 근거하여 가늠해야 정확한 것이다. 성품 변화와 진리 실행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이제 깨달았느냐? 여기에 대해 체험한 것이 있느냐? 너희가 문제의 본질에 관한 것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너희는 진입이 너무 얕다. 온종일 뛰어다니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게 보내지만, 생명 성품에 어떤 변화도 없고, 무엇이 성품 변화인지도 알지 못한다면 진입이 너무 얕은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든 짧든, 너희는 성품 변화에서 본질적인 것, 깊은 것을 느끼지 못할 텐데, 이것을 성품이 변화됐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적어도 일을 할 때마다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 또는 평소에 성령이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네게 역사한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 말씀과 맞아야 한다. 어느 정도 체험하고 나면 너는 네 예전 행동들이 꽤 적절했다고 느껴야 한다. 네가 한동안 체험하고 나서 예전에 행한 일 중 일부는 스스로 봐도 적절하지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이는 네가 한 모든 일이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의미이고, 너의 섬김에는 거역과 대적, 사람의 방식이 가득했다는 의미이며, 네게 성품 변화가 전혀 없다는 의미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인식> 중에서

519) 사람이 아무리 많은 좋은 행위가 있다고 해도 진리 실제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진리 실제가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어야 진리 실제가 있다. 사람이 열정이 있고, 도리를 말하고 규례를 지키며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조금 인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도리를 잘 말하고 늘 규례를 지키는 사람이 꼭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맞고, 듣기엔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진리 본질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많은 도리를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니며, 많은 도리를 안다고 해도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종교 이론가들은 성경을 해석할 줄 알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 쓰러진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다르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 모든 일을 분별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어떻게 해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 어떤 성질인지 알고 있으며, 사람의 생각과 관념이 드러날 때 그것을 분별하여 육을 버릴 수 있다. 이는 성품이 변화된 모습이다. 성품 변화의 가장 주된 모습은 진리를 밝히 깨닫고, 일을 처리할 때 진리 실행이 비교적 정확하며, 패괴를 드러내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행동이 남달리 이성적이고 분별력이 있다. 진리를 깨달았기에 교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적게 드러내며, 드러내는 많은 패괴를 명확히 알고 분별할 수 있기에 교만해질 수 없다. 사람이 마땅히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본분을 지키는 것인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러한 일들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비교적 이성적이고, 그런 사람만이 진실로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달았기에 말을 할 때도, 일을 바라볼 때도 진리에 근거하며,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이 있다. 또한, 어떤 사람과 일, 사물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이 있으며, 진리 원칙을 견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성품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쉽게 끓거나 식는 일이 없으며, 어떤 환경에서든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겉으로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 수 있을지 신경 쓰지 않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고, 큰일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의와 가치, 그리고 실제적 성과가 있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틀림없이 많은 진리 실제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일을 처리하는 원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절대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없다. 성품 변화는 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사람은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어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가졌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다. 사람이 얼마나 깊이 패괴되었든 얼마나 많은 패괴 성품을 가졌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고, 온갖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된다. 동시에 자신의 본성 본질을 똑똑히 알게 된다.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면 자신을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할 수 있으며, 사탄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길 원하게 된다. 사람에게 이런 의지가 있다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면, 사탄 성품이 정결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마음속에 뿌리내려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의 생존 토대가 되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되면, 이것이야말로 생명 성품의 변화다. 성품 변화는 인성이 성숙하고 노련해진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사람의 외적인 성품이 전보다 온순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비교적 교만했는데 지금은 이성적으로 말한다든가, 예전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래도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듣는다든가 하는 외적인 변화로 성품이 변화되었다고 할 수 없다. 성품 변화에는 당연히 그런 모습도 포함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 생명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사람 안에 뿌리내리고 권세를 잡아 사람의 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뀐다. 세계와 인류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탄이 어떻게 인류를 패괴시켰는지, 큰 붉은 용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큰 붉은 용의 본질이 무엇인지 완벽히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하며,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게 된다. 이러면 사람은 생명 성품이 변화된 것이고,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생명 성품의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이고, 행위의 변화는 표면적인 변화이다. 생명 성품이 변화된 사람만이 진리를 얻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520) 패괴가 정결케 되고 생명 성품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무엇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냐? 네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든, 네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 즉 어떤 사탄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에서 그것을 폭로하면 인정하고 순종해야 하며, 다른 선택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해도, 그 말씀이 아무리 엄해도, 어떤 어휘를 사용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사실 진상에 부합한다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을 얼마나 깨달았든 순종해야 한다. 형제자매가 성령의 깨우침으로 인한 빛 비춤을 교제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어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어느 정도 있고 좋은 일도 얼마간 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할 수 있을지라도 진리를 참답게 대하지 않고 건성이며, 생명 성품에 늘 변화가 없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비교해 보면 인성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베드로에게 눈에 띄는 점은, 진리를 추구하는 데 특히 열성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어떻게 말씀하든 모두 깊이 묵상했다. 예수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자 베드로는 “저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을 사랑할 뿐, 땅에 계신 주님은 사랑하지 않았나이다!”라고 사실대로 말했지만, 나중에 ‘그게 아니구나. 땅에 계신 하나님이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다. 하늘과 땅에 계신 하나님은 모두 같은 한 분의 하나님 아니겠는가? 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실제적이지 않다. 땅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실제적이구나!’라고 깨달았다. 예수의 질문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땅에 계시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사랑해야 실제적이다. 막연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실제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눈에 보이는 실제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진리이다. 그는 예수의 말 속에서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마지막에는 실제의 하나님, 땅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진리를 추구할 때 지극히 참답게 대했다. 예수가 말씀으로 짚어 줄 때마다 마음으로 깊이 생각했고, 어쩌면 반년, 1년, 심지어는 몇 년을 생각한 후에 성령이 깨우쳐 주면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렇게 진리에 진입했으며, 그의 생명 성품은 진리에 진입하면서 더 새롭게 변화되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521) 성품 변화를 이루는 관건은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하나님이 폭로한 것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자신의 추악한 본성과 본성 안에 있는 각종 사탄 독소, 자신의 무지몽매함, 그리고 자기 본성 안에 있는 연약한 부분과 소극적인 부분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철저히 인식한 후에 진실로 스스로를 증오하고 육을 저버리며,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 추구로 성품이 변화되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베드로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은총이 없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다면 이 길은 가기 힘들 것이다. 사람은 진리가 없고 자신을 저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걸은 온전케 되는 길을 가려면 의지와 믿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며, 또한 성령 역사에 순종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선 안 된다. 이는 핵심적인 몇 가지 부분으로, 하나라도 어겨선 안 될 것이다. 체험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성령 역사 없이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 베드로의 길을 가려면 반드시 자신을 알고 성품 변화를 이루는 데 집중해야 한다. 바울의 길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을 알아 가는 데 집중하지 않고 사역과 사역의 영향력에 특히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의 속셈은 사역하면서 겪는 고난을 대가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 하나님께 상을 받는 것이었다. 그 속셈은 그릇되었다. 그는 생명을 중시하지도, 성품 변화를 중시하지도 않고 오직 상을 받는 것에만 집중했다. 추구하는 목표가 틀렸으니 당연히 걸은 길도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의 교만하고 거만한 본성의 소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었고, 양심이나 이성도 없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주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에게서 성품 변화의 성과를 거둬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는 목적이다. 바울의 추구 방법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고 충돌하며,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반면 베드로의 추구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는 생명을 중요시하고 성품 변화를 중요시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이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베드로의 길은 하나님께 축복과 인정을 받는 것이고, 바울의 길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에 하나님께 증오와 저주를 받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522) 지금 많은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얕다.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것들을 전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표출하는 일부 패괴된 내적 상태, 어떤 일들을 저지르기 쉬운지, 또는 자신에게 어떤 부족한 점들이 있는지 등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긴다. 또한, 일부 규례를 지키고 절대 몇 가지 측면의 잘못을 범하지 않아 몇 가지 과오를 범하지 않는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실제가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적으로 사람의 상상이다. 네가 이런 것을 지킨다고 정말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정말 성품이 변화되겠느냐? 정말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게 되겠느냐? 정말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단언하건대 절대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높은 기준을 가짐으로써 진리를 얻고 생명 성품에 얼마간 변화가 생겨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먼저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부터 공을 들여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얕으면 전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생명 성품도 결코 변화될 수 없다. 반드시 스스로를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알아야 한다. 바로 자신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그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 그 외에 너는 그러한 것들을 증오할 수 있느냐?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보았느냐? 사람이 진실로 자신의 본모습을 본다면 자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증오하게 됐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육을 저버릴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힘을 갖게 되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많은 사람이 육적인 기호를 따라 행하겠느냐? 그 이유는 그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고 정당하며 어떤 문제도 없고, 심지어는 완전히 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추하고 비열하며 가련한지 정말로 알게 되면, 그 뒤로는 그렇게 건방지거나 교만하게 굴지 않을 것이며, 예전처럼 기고만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인간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살 염치도 없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보잘것없다고 여기고,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 수월하게 진리를 실행하게 되고, 비로소 조금이나마 사람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사람은 진실로 자신을 증오해야 육을 저버릴 수 있다.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육을 저버리지 못한다. 진실로 자신을 증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빈궁하고 가련하며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가련하고 더러운 영혼을 아는 것이다. 진실로 자신의 본모습을 꿰뚫어 보는 성과를 얻었다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을 증오하고, 나아가 자신을 저주할 수 있으며,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나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고 절실히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정말 죽음의 위협이 닥친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이구나.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셔. 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하지!’ 그때의 그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매우 빈궁하고 가련하며 너무나도 더럽고 패괴되었으니 마땅히 하나님께 도태되고 멸망되어야 한다고, 그런 영혼은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대적하지도 않고, 더욱이 배반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추구했으며,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난을 겪었는데, 하나님은 결국 나를 죽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하나님은 왜 나를 죽게 하시는 걸까? 나 같은 사람마저 죽어야 한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인류는 끝장나는 게 아니겠어?’ 그는 첫째로 하나님께 관념을 가지고 있고, 둘째로, 원망을 하며 순종이라고는 전혀 없다. 바울처럼 말이다.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는 모든 것이 늦었던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523) 사람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면 옛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생명이 부단히 자라 진리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며,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특히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분명한 인식이 생기면서 진리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진리 추구를 목표로 삼는다. 또한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으려 하고, 사람의 독선과 교만함, 거만함에 염증을 느끼며, 분수에 맞게 말하고, 일이 닥치면 분별력과 지혜를 갖고, 하나님께 충성심과 순종을 보이게 된다. 형벌과 심판을 겪을지라도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다고 느끼며, 형벌과 심판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 평안함, 즐거움, 기복 신앙을 추구하지 않고, 한순간의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모두 온전케 된 사람이 갖고 있는 모습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524) 만약 누군가가 본분 이행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말과 일 처리에 다 원칙이 있으며 각 측면의 진리에서 모두 진리 실제에 진입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그에게서 완전히 성과를 거뒀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는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의 육적인 본성, 즉 그가 갖고 있던 기존의 생존 토대는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은 후에야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사역의 이상(異象)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폭로와 요구, 사람에게 요구한 인생의 기준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이러한 말씀과 이러한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사람이자,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 삶을 얻고 새사람이 된 자이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걸은 진리 추구의 길이자 온전케 되는 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을 얻었다.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그의 생명이 되었다. 그가 바로 진리를 얻은 사람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525) 만약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여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진실로 거룩하며 공의롭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찬미할 수 있다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을 인식한 것이고 진리를 얻은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이 바로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인식하여 얻게 되는 성과는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과 순종을 바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깨닫고 얻으면 그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에는 참된 변화가 생기며, 그로 인해 생명 성품에도 진실한 변화가 생긴다. 사람이 올바른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에 근거해 처신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에 조금의 어둠도 없이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인생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 밖에, 네가 깨닫고 얻은 진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지고한 하나님 곧 창조주가 너를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라고, 사람의 모습을 살아 냈다고 칭찬한다면, 이것이 바로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526)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생명에 대한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진리의 진입과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 온전케 될 수 없다.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행한 사역, 특히 형벌과 심판의 의의, 왜 사람에게 이 사역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이런 형벌 속에서 네가 베드로와 같은 체험과 인식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느냐? 네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령 역사를 아는 것, 그리고 성품 변화를 추구한다면 온전케 될 기회가 있다.

온전케 되는 사람에게 있어서 정복되는 이 단계의 사역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정복되어야 온전케 되는 사역을 체험할 수 있다. 네가 정복되는 역할만 맡는다면 그리 큰 가치가 없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도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복음이 확장될 때 너의 몫을 바칠 수가 없다. 그것은 네가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변화되고 새로워지기를 추구하지 않아 실제적인 생명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에서 너는 봉사자가 된 적이 있고 부각물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베드로처럼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베드로가 온전케 된 길을 따라 추구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성품이 변화된 체험도 없을 것이다.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너에게 간증이 있을 것이다. 그럼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 한 단계 한 단계 사역에서 저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을 얻고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지요. 그분의 형벌이 저를 구원했습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이 임하여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고요. 바로 그분의 심판과 형벌로 보호를 받고 정결케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고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저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알지도, 구원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늘날 저는 피조물로서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공의로운 심판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누릴 가치가 있기에 사탄에게 패괴된 피조물은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누려야 합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심판과 형벌도 있지만 크나큰 사랑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그 사랑을 깨달았어요. 이건 제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체험한 사람이 가는 길이자 말하는 인식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고, 베드로의 체험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체험하면 반드시 심판을 통해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지게 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27) 내가 원하는 사람은 베드로 같은 사람이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진리는 간절히 바라고 찾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고, 이 구원은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너희는 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질 수도 있다. 너희가 하나님을 얻으면 하나님도 너희를 얻게 된다.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다 들었으니 나의 이 말대로 실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너희가 이 말을 실천했다면 나는 이 말을 통해 너희를 얻은 것이고, 동시에 너희도 이 말을 얻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커다란 구원을 얻은 것이다. 너희가 정결함을 얻으면 진정한 사람에 속하게 된다. 네가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고 온전케 된 모습으로 살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 걸어 다니는 송장이자 짐승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가 없기에, 즉 여호와의 생기가 없기에, 너는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다! 정복된 후에도 간증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저 아주 작은 구원의 은혜를 얻은 것일 뿐, 네가 영이 있는 산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형벌과 심판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너의 성품이 새로워지거나 변화된 것은 아니므로 너는 여전히 옛 사람이자 사탄에 속한 사람이지, 정결케 된 사람은 아니다. 온전케 된 사람만이 가치가 있고, 이런 사람만이 진정한 인생을 얻은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528) 앞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겠느냐?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 진리에 깊이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지는 길이다. 너희는 모두 하나님의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 부탁은 어떤 것이겠느냐? 그것은 다음 단계의 사역과 관계가 있다. 다음 단계에는 전 우주에서 더 큰 사역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너희는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하나님이 사역하여 영광을 얻는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너희를 그의 이후 사역을 위한 표본으로 만들 수 있다. 오늘날의 추구는 모두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이것을 목표로 추구한다면 성령이 함께할 것이다. 추구하는 목표가 높을수록 더 온전케 될 것이며, 진리를 추구할수록 성령이 더욱 많이 역사할 것이고, 추구하는 힘이 클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성령은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온전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거나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으며, 그저 육적으로 평안하고 재앙만 없으면 된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고 무저갱에 내려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것도 이루어 준다. 하나님은 네가 추구하는 것에 맞춰 이뤄 줄 것이다. 지금 너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느냐?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느냐? 지금 네가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 위함이냐? 일상생활 속에서 너는 늘 이렇게 스스로를 가늠해 봐야 한다. 네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 마음으로 추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이는 성령이 가는 길이다. 성령이 인도하는 길은 사람의 추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를 갈망할수록 성령은 네 내면에서 더 많이 역사할 것이고, 네가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물러날수록 성령은 역사할 기회가 없기에 차츰 네게서 떠나갈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느냐? 너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행동이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며 쓰임받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와 만유로 하여금 하나님의 행사가 너희에게 나타났음을 보게 해야 한다. 만물 가운데서 너희가 만물의 주인이고, 만유 가운데서 하나님이 너희로 인해 증거와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가장 복받은 세대임이 증명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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