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바리새인들은 종종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하고, 사람들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이 매우 경건해 보여서, 사람들이 보기에도 성경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께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들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노기를 불러일으켰습니까?
성경 참고: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3~9)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 가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벌을 받으리라)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으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게 되면 너희보다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도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마 23:13~36)
관련된 하나님 말씀: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道)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의 설교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올무에서 살아가고, 자신의 육, 그리고 사욕으로 살아가며,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내 마음에 합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 칭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도는 나와 상반된다. 그들의 말에는 교만함과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다. 그들은 본래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고 나와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마다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으며, 내키는 대로 ‘적합한’ 구절을 찾아 하염없이 읊조리는가 하면,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까지 한다. 그들은 나와 합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이 나와 적대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경’만 읽을 뿐이다. 그들은 아예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여유가 생길 때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는다. 그들은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며 ‘나’와 ‘성경’을 동일시한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장절로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늠하고,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하는 길이지, 나와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합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 아니겠느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찾지도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에게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성경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인자하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옹호하기 위함이었고, 또 성경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차라리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다. 그런 그들을 성경 글귀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
막 3:21~22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마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말로써 인자를 거스르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번 생에서도 내세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
성경을 보면, 바리새인은 예수와 그가 행한 일에 대해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고 평가했다. 예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사를 직접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이다. 비록 그들이 정의를 견지한다는 간판을 내걸어 그 결론에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졌을지라도, 예수를 판단하는 그들의 위세는 그들 스스로도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고만장했다. 예수를 증오하는 그들의 광기 어린 기세는 그들의 야심과 그들이 지닌 사악한 사탄의 몰골,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악독한 본성을 드러냈다. 그들이 예수를 판단한 그런 말들은 바로 그들의 야심과 질투,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일의 근원, 예수의 말씀과 행사의 본질을 살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미친 듯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예수의 모든 행사를 공격하고 비방했다. 심지어 예수의 그 영, 즉 성령이자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의 사역을 미쳤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모독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본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본질과 완전히 같다. 그들은 패괴된 인류를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탄의 화신을 대변했다. 그들은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출구이자 사탄의 공범자이며 심부름꾼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비방하는 본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맞서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본질,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그들의 태도, 그들 입으로 말한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모든 것들은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 그들의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정했다. 그 죄는 다음 성경 구절과 같이 이번 생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번 생에서도 내세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옛날에 이스라엘에서 존중받는 계층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어째서 지금은 그런 꼬리표가 붙은 것이겠느냐? 그들은 한 부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됐는데 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느냐? 외식하고 포장하고 위장하는 데 능하여 매우 고상하고 거룩하며 정직하고 떳떳한 사람인 척하고 그럴싸한 구호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좋은 행위를 했느냐?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런 것들이 모두 좋은 행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말만 번드르르할 뿐 뒤에서는 제물을 훔쳐 먹었다. 예수는 그들을 보고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 23:24)라고 했다. 바로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외적인 좋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구호를 외치고, 거창한 이론을 얘기하며 말도 번드르르하게 잘했지만, 행하는 것은 모두 엉망이고 전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다. 외적인 행위는 모두 가식적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며, 속으로는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 하나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무엇을 사랑하겠느냐? 공의와 공평함을 사랑하겠느냐? (사랑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들이 그런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예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되레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정죄하지 않았다면 알아챌 수 있겠느냐? 알아챌 수 없다. 예수의 현현 사역으로 바리새인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들이 예수를 정죄하고 대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로소 그들의 외식을 알아차렸다. 예수가 나타나 사역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바리새인을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외적인 행위만 보았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가식적인 좋은 행위로 사람을 속여 신뢰를 얻었다. 이것은 위선이자 간사함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이 이렇게 좋은 행위를 보여 주는 그 이면에 어떤 목적이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구슬려서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상을 받으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기극이냐! 고단수가 아니냐? 이런 사람들이 공평함과 공의를 사랑하겠느냐? 분명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위와 명리를 사랑하고, 상과 면류관을 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는 그 말씀들을 그들은 한 번도 실행하지 않고, 진리 실제를 전혀 살아 내지 못한다. 모두 좋은 행위로 포장하고, 외식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끌어들여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확고히 한 다음, 이런 것들을 이용해 밑천과 밥그릇을 손에 넣는다. 이것은 비루한 짓이 아니냐? 그들의 모든 행동을 통해 그들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결코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보고 그들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제일 큰 일은 이것이다. 예수가 구속 사역을 하러 왔고, 예수가 하는 모든 말은 진리이고 권병이 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대했느냐? 그들이 예수의 말에 권병과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정죄하고 모독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겠느냐?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한 말이 옳고 권병과 능력이 있으며 틀린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그 어떤 꼬투리도 잡지 못했으면서도 예수를 정죄하려고 의논하고 음모를 꾸몄으며 “그를 못 박아 죽여라. 그가 있으면 우리는 없고, 우리가 있으면 그는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예수와 적이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임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을 위해 귀신을 쫓고 병을 치료해 주었으며,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였을 뿐 아니라,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이만큼 훌륭하고 의로운 사람이 없는데도 바리새인은 어째서 예수를 정죄하려고 한 것이냐? 어째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만 했던 것이냐? 그들은 죄인을 석방할지언정 예수는 풀어 주지 않았다. 이것으로 종교계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악독한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너무 악하다! 바리새인이 드러낸 사악한 얼굴과 그들이 겉으로 위장한 선량함이 너무도 달라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의 현현 사역을 통해 그 바리새인들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바리새인이 평소에 얼마나 잘 위장하고 겉보기에 얼마나 경건하게 보였는지, 그들이 그토록 잔혹하게 예수를 대적하고 박해할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진상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바리새인이 외식하고 사악한 이유는 그들이 진리는 싫어하지만 지식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로지 성경을 깊이 파고들어 성경 지식만 추구하면서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거나 진리를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 하나님이 했던 말씀과 일을 연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종의 이론이나 학설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 이것이 깊이 파고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했겠느냐? 그들은 무엇을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냐?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발현이 아니며 진리는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학문의 한 일종으로 보는데, 신학 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이런 지식과 학문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전도라는 것이며, 그들은 항상 신학 지식을 이야기하며 전도한다.
… 바리새인은 그들이 알고 있는 신학적 이론을 하나의 지식이자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삼았고, 심지어 그것을 예수께도 사용하고 예수를 정죄했다. 그들은 한 사람을 평가하거나 대할 때 그 사람의 본질에 근거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전하는 도가 진리인지의 여부에도 근거하지 않았으며, 그 사람이 한 말의 근원에는 더더욱 근거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이 알고 있는 구약 성경의 규례나 글귀, 도리로만 판단하고 정죄했다. 그들이 속으로는 주 예수가 말씀하고 행한 것이 죄가 아니고 율법을 어기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정죄하려 했던 것은 주 예수가 선포한 진리와 행한 이적과 기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주를 따르고 찬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리새인은 그를 점점 더 증오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를 제거하기까지 하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주 예수를 메시아의 강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주 예수의 말씀에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주 예수의 행사가 진리에 부합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 예수가 참람한 말을 하고,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주 예수에게 이런 죄명을 씌운 것은 주 예수를 속으로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들이 주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자,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라는 것을 사력을 다해 부인했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을 행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실 거였으면 대단한 지위의 가문에서 태어나셨어야죠. 그리고 서기관, 바리새인에게 훈련받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파고들어 성경 지식을 알아서 성경의 모든 지식을 갖춰야 ‘성육신’이라는 호칭을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주 예수는 이런 지식을 갖추지 않았으니 그들이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정죄했던 것이다. “첫째, 당신은 이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아닙니다. 둘째, 당신이 이런 성경 지식을 쌓지 못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을 테니 당신은 더더욱 하나님일 리 없습니다. 셋째, 사역할 때 성전을 나가서는 안 되는데 당신은 지금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 않고 항상 죄인의 무리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역은 성경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당신은 더더욱 하나님일 리 없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렇게 정죄하는 근거는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람의 머리와 사람이 받은 신학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관념과 상상, 지식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이런 지식이 옳은 것이고 진리이며 근거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하나님도 이를 어기며 사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구하느냐?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구하느냐? 초자연적인 하나님, 영체의 현현을 구한다. 그러니 그들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 지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고 부인하며,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결과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는 것도 모자라 성육신한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