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람의 몇십 년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사람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기다립니다. 한평생을 가정과 돈, 지위, 명예와 이익을 위해 바쁘게 뛰느라 진정한 인생의 방향과 목표도 없고, 삶의 가치와 의미도 찾지 못합니다. 이렇게 세대를 거듭하며 살다 보면 참으로 허무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허무하고 고통스러울까요? 어떻게 해야 인생의 허무와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람은 일생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그런 고통이 있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처음에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는 그런 고통이 없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그런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었겠느냐?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고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타락한 뒤 그러한 고통이 생겼다. 육의 고통, 육의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처참한 일들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생겨났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이후로 사탄은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하고, 병이 점점 깊어지고, 고통도 점점 심해졌다. 인간 세상의 공허와 비참함, 생존할 수 없음을 더욱 느끼면서 인간 세상에서 살수록 삶의 희망이라곤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런 고통은 사탄이 사람에게 준 것으로,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타락한 뒤에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이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경험하는 의의> 중에서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또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아득해졌다. 사람은 더 이상 인류의 존망이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는지,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주재하고 계획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기대와 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날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의 탐구하려는 갈망과 욕망이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함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고, 영문 모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도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러한 공통적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한 사회뿐만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구원을 얻어야만 필요와 탐구욕, 그리고 심적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나 보살핌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은 몰락과 흑암으로 나아갈 것이고, 종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2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사람은 이 한평생을 살면서 가난한 자도 있고 부유한 자도 있으며, 수명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다. 서민도 있고 고관대작도 있는데 온갖 계층의 사람이 다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하나다. 바로 야심과 욕망, 그리고 사탄 성품에 기대어 명리를 다투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왜 다 이렇게 살아갈까?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정말 없는 건가? 사람은 단지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건가? 죽고 나면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대대로 그 많은 사람들은 왜 다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걸까? 이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인류는 스스로 어디에서 왔는지, 이 한평생의 사명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누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주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한 세대 한 세대 왔다가 또 한 세대 한 세대 가 버린다. 대대로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죽는다. 같은 방식으로 왔다가 같은 방식으로 가 버리며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길을 찾지 못하고 이 일에 관해 진리를 구하는 사람도 없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모두 탐색하고 기다리며 앞으로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든 것을 주재하는 그분이 도대체 존재하긴 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은 이 답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마다 이렇게 기대하고 날마다 이렇게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사람이 만약 이 모든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안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느냐?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람의 바람과 갈망에 기대어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 또 왜 죽는 건지, 이 세상을 누가 주관하는지 깨닫고 나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그분이 바로 창조주라는 답을 얻고 나면 사람은 드디어 행할 길이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더 이상 바람과 갈망에 기대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지 않아도 된다. 만약 사람이 왜 살아가고 또 왜 죽는 건지 답을 찾았다면 사람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럼 사람은 해탈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진정으로 해탈하고 완전히 자유롭고 해방되는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너희는 찬양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그분>을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무엇을 사색해야 하겠느냐? 인류가 왜 살아가고 왜 죽는 건지 알게 되면, 이 세상 만물의 주재자, 즉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그분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인류에게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안다면, 이런 일들을 모두 깨닫는다면 인류는 창조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된다. 창조주에게 어떻게 경배하고 순종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마음속에 의지할 곳이 생겨 평안하고 행복해지며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길을 걷는지가 사람이 이 한평생 행복할지, 아니면 비통할지를 결정한다. 사람은 이를 깨달아야 한다. 이 찬양을 듣고 나서 사람은 마음속에 이런 감회가 들 수도 있다. ‘인류는 모두 이런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고대의 사람도 예외 없고, 현재의 사람도 예전대로 여전히 이러한 방식들을 바꾸지 않았구나. 그럼 이 인류 가운데 한 분의 주재자, 전설 속의 한 분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 아닐까? 만약 하나님을 찾고 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찾고 나면 인류는 마음속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중요한 건 인류의 뿌리를 찾는 거야. 이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뿌리를 찾고 나면 사람은 다른 경지의 삶을 살 수도 있어. 만약 이 뿌리를 찾지 못하고 인류가 계속 이대로 살아간다면 인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인류가 깊이 패괴되었다는 것을 알더라도 뭘 어찌할 수 있겠느냐? 패괴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길이 있겠느냐? 네가 좋게 변하고 싶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한들 가능하겠느냐? 너는 행할 길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보았다고 해 보자. 너는 그런 삶의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너는 자식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또 돈과 명리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해 보자. 너는 마음속으로 그 길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너는 돈과 명리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네가 걷는 길이 곧 명리를 추구하는 길이고, 그것이 잘못된 길임을 알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한다. 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너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이 참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정신을 어느 곳에 의지하겠느냐? 단란한 가정, 행복한 혼인, 물질적 향락, 금전, 명리, 지위, 감정, 사업, 그리고 후손의 행복, 이런 일들에 의지한다. 모든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다 이러한 것들 아니겠느냐?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에게 의지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과 혼인, 사회적 지위와 명리에 의지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삶의 방식이 모두 같은 것이다. 모두 사탄의 권력과 통제 아래에서 자기도 모르게 명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앞날, 사업, 혼인, 가정, 후손, 육적 향락,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내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겠느냐? 인류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바쁘게 지내고 사업이 아무리 성공했다 한들, 가정이 아무리 행복하고 가족이 아무리 대가족이라 한들,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 인류가 명리와 세상을 좇고 사업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인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이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길을 걷든 만약 그가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가 걷는 길은 잘못된 길이고 올바른 길이 아니며 비뚤어진 길이자 사악한 길이다. 네가 정신적 지주로부터 만족을 얻었든, 얻지 못했든, 너의 정신적 지주가 어디에 있든 그건 모두 진정한 신앙이 아니고 인생의 올바른 길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들이 바로 인생의 올바른 길이며 사람이 추구해야 할 진리이자 생명이다.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진리를 깨닫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전능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우주 만유의 주재자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 그러면 인생의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사람이 인생의 올바른 길에 들어서면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빛 속에서 사는 것이고 비로소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 운명이야.”라는 말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주재를 전혀 믿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안배하고 있다는 사실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려 하지도 않는다. 바다 위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도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사람처럼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다 운명이라 생각하며 단념할 뿐이다.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재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삶,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삶, 더 이상 운명에 맞서지 않는 삶,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삶을 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하게 된 것은 아니다. 운명을 믿는다고 창조주의 주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알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과 이 사실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주재하는지 알거나, 그가 만물의 운명을 주재하는 근원임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며, 인류의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과는 더더욱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이 운명만을 믿고 심지어 이를 마음 깊이 느꼈음에도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며, 순종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의 이번 생은 한 편의 비극일 것이다. 여전히 헛되고 공허할 것이며, 여전히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지 못해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된 인류가 되지 못한다. 진정으로 창조주의 주재를 알고 경험한 사람의 내적 상태는 소극적이거나 무력하지 않고 적극적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의 운명이 정해져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마음속으로 삶과 운명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게 된다. 사람의 일생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정의 말이다. 사람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자신이 지나온 인생의 각 단계들을 떠올려 볼 때, 매 걸음마다 힘들었든 수월했든 다 하나님이 안배하고 인도해 왔음을 보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정성스러운 안배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어 창조주의 주재와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은 이번 생에서 얻은 얼마나 큰 복인가! 누군가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소극적이라면, 이는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안배한 모든 것에 반항하며, 순종하는 태도가 없다는 증거다. 누군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라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순종하고 싶은 더욱 진실한 소원이 생길 것이다. 또한 그의 운명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겠다는 더 큰 결심과 믿음을 가지며, 하나님께 더 이상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이 운명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성미대로 안개 속에서 헤매고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그 길이 매우 고단하고 또 쓰라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삶을 만들고자 했던’ 고통스러운 날들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지, 계속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계속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없던 나날, 하나님을 볼 수 없던 나날,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던 나날, 그런 나날들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었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한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쓰라림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을 가져다주고, 그런 날들은 돌이켜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얻기를 추구해야 사람은 차츰 모든 쓰라림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삶의 모든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도, 하나님의 주재도 알지 못하기에 늘 대항하려는 마음과 패역의 태도로 자신의 운명을 대한다. 또 사람은 늘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 그리고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현재 상황과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망상을 품는다. 그러나 늘 뜻대로 되지 않고, 곳곳에서 벽에 부딪힌다. 영혼 깊은 곳에서의 이런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그 고통은 마음 깊이 새겨지며, 동시에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헛되이 소진되게 한다. 그 고통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나님의 주재 탓일까,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쁜 탓일까? 둘 다 틀렸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이 걸어가는 길, 사람이 선택한 생존 방식으로 인해 생겨났다. 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고 인정할 때,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네게 더없는 이로움과 크나큰 보호가 된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너는 고통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온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유롭고 해방될 것이다. 현재 대다수 사람들의 내적 상태를 보면, 주관적으로는 고통에서 벗어나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의 실제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창조주의 주재를 진정으로 인정하지도 순종하지도 못하며, 어떻게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를 구하고 받아들이는지 역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과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창조주의 권세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하면, ‘운명은 스스로 정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기 쉽지 않고, 운명과 창조주의 권병에 필사적으로 반항하며 생기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물론 참된 자유를 얻기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기도 아주 어렵다. 이런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생존 방식과 인생 목표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기존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목표, 소망과 꿈을 정리해 보고 분석한 다음,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을 갖춘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생존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하다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뿐, 하나같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네 삶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의 지배와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실은 어려운 일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기꺼이 응하고 어떤 이는 꺼린다. 이를 꺼리는 사람들에게는 응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없다.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안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거나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의 힘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 사람의 슬픔은 사람이 행복한 인생과 명리를 추구하기 때문도, 안개 속에서 운명에 맞서기 때문도 아니다. 창조주의 존재를 보고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고집을 부리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마음속에 강퍅함이 있어 차라리 수렁 가운데서 계속 발버둥 치겠다며 고집스럽게 창조주의 주재에 맞서고 끝까지 대항하며 회개하려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나서야 포기하고 돌아서기를 택한다. 이것이 사람의 진정한 슬픔이다. 그렇기에 나는 순종을 선택한 자는 현명한 사람이고, 벗어나려고 하는 자는 우매하고 완고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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