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결혼의 노예로 살지 않으니 참으로 자유롭네

중국 청나(程娜)

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남편과 이혼했습니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당시 남편에게는 미성년인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결혼 생활만 잘 지켜내면 남은 인생은 의지하며 살 곳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를 친아들처럼 돌보면서 눈먼 시어머니의 시중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비닐하우스를 짓고 채소를 심어 돈을 벌었고, 남자들이 하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에 나가 채소를 팔며 집안 살림에 보탰습니다. 저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저를 세심하게 챙겨 주었고, 아이들도 저를 ‘엄마, 엄마’ 하며 따랐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가정을 잘 돌보기만 하면 늙어서 의지할 곳이 생기니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십 년 후, 저는 예상치 못한 뇌혈전증으로 쓰러져 침상에 누워 거동조차 못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저를 치료해 주었고, 입원 기간에도 저를 정성껏 돌봐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치료를 받아도 병은 낫지 않았고,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으니 앞으로는 남편의 보살핌에 기댈 수밖에 없겠구나. 남은 인생동안 내가 기댈 유일한 곳은 남편뿐이야.’ 얼마 후, 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야 남편이 잘해주지만, 내 병이 계속 낫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 나를 귀찮아하며 버리지는 않을까? 아이들은 어차피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니고, 내 곁에는 아무런 가족도 없는데, 늙으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지?’ 저는 늘 이 문제로 근심했고, 심지어 살아갈 용기마저 잃었습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던 2013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조금 깨닫게 되었고, 제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만이 제가 기댈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무척 해방되고 기뻤으며, 더는 그런 일로 근심하고 눈물짓지 않았습니다. 점차 병세도 호전되어 혼자 생활할 수 있게 되자, 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남편도 제 병이 많이 나은 것을 보고 저의 신앙 생활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남편은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체포되어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중공 정부가 퍼뜨린 유언비어까지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신앙 때문에 체포되어 아들의 직장과 손자의 앞날에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워하며 저의 신앙생활을 가로막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친척들까지 동원해 저를 핍박하며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남편 말을 듣지 않고 신앙을 고집하면 남편과 아들의 미움을 살 텐데, 앞으로 편한 날이 있겠어?’ 그래서 저는 예배에 나가거나 본분을 이행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오직 이 가정을 지키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예배에 나가지 않자 저에 대한 남편의 태도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교회 생활을 잃고 형제자매들과 하나님 말씀을 교제할 수 없게 되자, 마음이 텅 빈 듯 공허했고 몹시 괴로웠습니다. 며칠 후, 리더가 저를 도와주고 붙들어주러 와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다시 몰래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습니다. 연말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제가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제 남동생과 여동생을 끌어들여 저를 비난하는 자리를 만들고 신앙을 포기하라고 핍박했습니다. 제가 타협하지 않자, 남편은 집안의 현금과 통장까지 모두 가지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몸이 약한 제가 집에 혼자 남겨져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이 살아가려니, 당시에는 정말 살길이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괴롭고 복잡했습니다. ‘신앙을 계속 지키자니 남편이랑 이혼이라도 하면 집도 없어질 테고, 나이도 점점 들어가는데 몸까지 아프니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지? 앞으로 누가 내 노년을 부양해주지?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자니 그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될 거야.’ 그 후, 한 자매가 저를 도와주고 붙들어주러 왔고, 저는 가정의 핍박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의지해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읽으니 마음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남편이 돌아왔지만, 저는 여전히 예배에 나갔습니다. 다만 매번 남편이 모르게 몰래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2016년 봄, 리더가 저에게 문서 본분을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쁘면서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맡게 된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이자 높여 주심이기에 이 훈련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도 들었습니다. ‘문서 본분을 이행하려면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할 때도 있는데, 만약 남편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가 그걸 빌미로 날 버리면 어떡하지? 그러면 난 집도 없어지는 거잖아? 그랬다가 내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에 저는 결국 그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마음속으로 늘 가책을 느꼈습니다. 문서 본분을 이행하며 더 많은 진리를 갖출 기회가 있었음에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그 기회를 걷어차 버린 채, 차라리 집에서 남편에게 얽매이고 속박당하며 사는 것이 낫다고 여겼으니, 이게 스스로를 비하하는 천한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023년 8월, 교회 리더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체포된 형제자매가 적지 않아 접대 가정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자매님 댁에서 자매 한 분을 접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집에 일이 있을 때만 돌아오니 평소에는 나 혼자 있어. 몸이 안 좋아서 다른 본분은 못 하지만 자매 한 분을 접대하는 건 문제없지. 자매님이 온다면 나도 본분을 이행하고 선행을 쌓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자매를 보면 어떡하지? 남편은 원래부터 내 신앙 생활을 반대했고, 툭하면 이혼 얘기를 꺼내는데, 이 일로 남편의 심기를 건드려 버림받기라도 하면 그게 가치 있는 일일까? 결혼한 가정도 없이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해서 늙은 몸을 돌봐 달라고 하지? 집도 생계 수단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예전에 남편이 신앙을 포기하라며 저를 핍박하던 장면이 떠올라, 속으로 걱정되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중공의 추적을 피해 마땅한 접대 가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자매를 생각했습니다. 저희 집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었기에 저는 결국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자매가 온 지 사나흘 만에 남편이 돌아왔고, 저는 속으로 난감해졌습니다.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지? 트집 잡지는 않을까? 만약 남편이 화가 나서 나와 자매를 둘 다 내쫓으면 어떡하지? 게다가 지금 상황도 좋지 않은데, 자매가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경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그때는 내가 선을 쌓기는커녕 악을 행하게 되는 거잖아.’ 그러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본분을 거절해서 하나님께 너무 많은 빚을 졌어. 지금은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많이 읽었고 진리도 어느 정도 깨달았는데,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면 사람 축에나 들 수 있겠어? 더는 본분을 거절할 수 없어.’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저는 기지를 발휘해 남편에게 자매가 며칠만 머물다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별말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매를 불러 함께 식사하자고까지 했습니다. 그제야 제 마음속을 짓누르던 큰 돌덩이를 내려 놓은 듯했습니다. 저는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기분을 거스를까 봐 정성껏 시중을 들었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메뉴를 바꿔 가며 요리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온 지 이틀 후, 저는 남편에게 감기가 옮아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며 온몸이 쑤시고 기운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픈 와중에도 남편 시중을 잘 들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 자매를 접대하는 것을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사에 남편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남편 기분이 좋으면 저도 자매에게 잘해주었고,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으면 제 마음은 조마조마했고, 그가 화를 내 저를 내쫓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제 마음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찼고, 당시 병세까지 심각해지자 이 본분을 맡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심지어 자매가 빨리 떠나기만을 바라며, 예전처럼 따뜻하게 대하지 않고 귀찮아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나중에 자매까지 아프자,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리더가 편지로 제가 남편에게 얽매여 있는 상태에 맞춰 하나님의 말씀 몇 단락을 찾아 보내 주었습니다. 그중 한 단락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결혼을 허락하고, 반려자를 주고, 다른 생활 환경을 주고, 이런 생활 환경과 배경 안에서 배우자와 네가 모든 일을 함께 분담하고 대면하게 해서 네가 더욱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살게 한다. 동시에 네가 인생의 다른 단편을 체험하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를 결혼에 팔지 않았다. 결혼에 팔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바로 네 일생과 운명, 네 사명, 또 네가 인생에서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어떤 신앙을 가지는가 하는 이런 것들은 네 배우자가 결정하도록 맡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 여자는 운명과 추구가 어때야 하고, 어떤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고, 어떤 인생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반드시 남편이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고, 한 남자는 운명과 추구, 인생관이 어때야 하고,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반드시 아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도, 그렇게 정한 적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이 최초의 인류에게 결혼을 정하면서 그런 말씀을 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남녀의 일생의 사명이니, 네가 반드시 결혼의 행복을 지켜야 일생의 사명이 완성되고, 피조물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일생의 운명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결혼을 정해 주신 것은 부부가 서로를 돌보고, 돕고, 붙들어 주며 모든 일을 함께 나누어 사람이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결혼에 팔아넘기도록 하신 것이 아니며, 결혼을 잘 지키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으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일을 배우자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저는 완벽한 결혼 생활과 행복한 가정을 위해 제 자신을 결혼에 팔아넘겼습니다. 기꺼이 남편의 노예가 되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집안일은 물론 남자들이 하는 힘든 일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 시중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이 결혼 생활을 잘 꾸려 늙어서 의지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저는 감히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고,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했습니다. 접대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남편이 집에 머무는 자매를 보고 귀찮아하며 저를 버리거나 돌보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얽매여 있었습니다. 억지로 자매를 접대하면서도, 저는 매사에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했습니다. 남편 기분이 좋으면 자매에게 좀 더 잘해주고, 남편 기분이 나쁘면 마음 졸이며 자매를 접대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고, 자매가 빨리 떠나 제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습니다. 저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늘 남편에게 얽매여 있었고,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병들어 가장 고통스럽고 무기력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매를 보내시어 저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되고 인도해 주셨기에 저는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도, 하나님은 자매를 여러 번 보내시어 저를 돕고 붙들어 주셨고, 점차 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피조물로서 본분을 다하여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저의 권리이며, 남편은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저의 사명이며,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희 집에서 마음 편히 지내세요. 남편이 저에게 어떻게 하든 저는 얽매이지 않을 거예요. 설령 이혼을 요구하더라도 저는 자매님을 접대할 거예요.”

하루는 밤 10시가 넘어 제 기침 소리에 남편이 잠에서 깼습니다. 그는 또 저에게 화를 내며 온갖 듣기 싫은 말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자매가 그 말을 듣고 얽매일까 봐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고, 남편의 사장이 그에게 다음 날 꼭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열어 주신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남편이 가끔 집에 돌아오는 탓에 자매가 지내면서 얽매이자, 교회에서 다른 접대 가정을 찾아 주었고 며칠 뒤 자매는 떠났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자책하며 자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자매가 있을 때 저는 늘 남편에게 얽매여 남편을 잘 돌보는 데에만 급급했고, 어떻게든 제 결혼과 가정을 지킬 생각만 했습니다. 본분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본분마저 잃게 된 것입니다. 그 뒤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매사에 남편에게 얽매이는 걸까?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렇게 구하던 중,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결혼 생활에 뛰어들려고 하고, 자신의 결혼 생활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분투하고 목숨을 바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돈을 벌고 죽기 살기로 고생한다. 물론 본인 일생의 행복을 자신의 반려자에게서 찾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들은 자신의 일생이 행복하고 즐거울지는 자신의 반려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렸다고 믿는다. 반려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자신의 성격과 지향점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돈을 잘 벌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미래에 내가 먹고살 걱정 없이 살게 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에게 행복하고 안정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자기가 어떤 고통과 환난, 실패와 좌절을 만났을 때 자기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 이런 생활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분별하지 않고, 완전히 상대에 대한 정 속에 살아가고, 정으로 그를 보살피고 포용하며 그의 모든 결점과 문제, 추구를 대하고, 심지어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이 너무 길다며 30분만 예배드리고 들어오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순순히 대답한다. 그리고 다음번 예배 때는 정말 3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진작에 이랬어야지. 다음에는 얼굴만 내비치고 들어오도록 해.” “아,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다음번 예배 때도 역시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참석한 지 1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은 무척 흡족하고 기뻐한다. “이 정도는 돼야지!” … 너는 배우자가 너에게 만족해서 네가 가끔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예배드리는 것에 동의하게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닭 모이 주고 개밥 주고 하면서 힘든 일을 모두 도맡아 했다. 남자가 할 일까지 다 했다.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녀처럼 뼈 빠지게 일만 했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남편 구두도 반짝반짝 닦아 놓고, 슬리퍼도 가지런히 놓아두고, 남편이 들어오면 잽싸게 몸에 묻은 먼지도 털어 주고 외투도 받아서 걸어 놓는다. “오늘 날씨 진짜 덥네요. 안 더워요? 목 안 말라요? 오늘은 뭐 먹고 싶어요? 새콤한 거? 아니면 매콤한 거? 옷 안 갈아입어도 돼요? 벗어 두면 빨아 놓을게요.” 꼭 하녀나 노예 같다. 이건 결혼의 틀 안에서 해야 할 책임의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 상대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그를 자기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가정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명백히 차이가 난다. 한쪽은 노예, 다른 한쪽은 노예주이다. 한쪽은 머리를 조아리고, 다른 한쪽은 눈을 부라린다. 한쪽은 굽실거리고, 다른 한쪽은 기세등등하다. 확실히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불평등하다. 왜 그럴까? 이 노예는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비굴하게 굴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 준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을 지키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 다른 한쪽은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배우자에게 너는 무조건 복종하고 무릎 꿇었다. 기꺼이 노예가 되고 하녀가 되어 그를 위해 애쓰고,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이건 어떤 인간이냐? 도대체 너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에게는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느냐? 배우자가 네 생활을 책임지는 것, 이는 하나님이 정한 일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빚을 진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데, 그러면 그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느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느냐? 결혼한 두 당사자는 둘 중 사나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 잘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혼한 양쪽은 서로 책임을 다하고, 서로 동반해 주는 것이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양쪽 모두 결혼의 틀 안에서 자신이 다해야 할 의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너는 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네 역할이 어느 쪽이든, 너는 그쪽이 할 일을 해야 한다.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너는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다. 속된 말로 형편없는 인간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이 형편없는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기꺼이 노예가 되어 주는 것은 너무나 멍청한 짓이고, 가치 없는 행동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게 어때서 그러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 이것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다. 나라와 정부에서 하나님 믿는 사람을 박해한다는 건 무얼 뜻하느냐? 이 인류가 너무나 사악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사악한 세력을 대표하고 사탄을 대표한다. 진리를 대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네가 남보다 낮은 자리에 있고, 남보다 등급이 낮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고귀하고, 또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 하나님은 너를 눈동자로 여긴다. 그런데 너 자신이 너를 짓밟고 배우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럼없이 노예가 되었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왜 그걸 못 하느냐? 이것이 사람의 비천한 부분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처럼 제 마음을 찔렀고, 저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남편과 결혼한 후부터, 저는 안정된 가정을 꾸려 늙어서 의지할 곳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온갖 방법으로 남편의 비위를 맞췄고,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갖 마음을 다해 남편이 비닐하우스를 짓고 돈을 버는 것을 도왔고, 두 아들을 정성껏 키웠으며, 불평 한마디 없이 꾸준하게 눈먼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저 남편과 아들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어떤 고생과 힘든 일도 달게 여기며 그들 가족의 식모가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남편이 중공 정부의 유언비어를 믿고 저의 신앙 생활을 극도로 반대하자, 저는 결혼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 앞에서 매사에 조심하며 굽실거렸고, 기꺼이 가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얽매이고 속박 당해 저는 감히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고, 예배에 나가서도 일찍 집에 돌아가 밥을 차려 남편 시중들 생각뿐이었습니다.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더더욱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저와 이혼하면 늙어서 저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 조차도 남편에게 얽매였습니다. 저는 ‘늙으면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한다’, ‘자녀로 노후를 대비한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깊이 통제되어 조금의 존엄도 없이 살았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결혼을 정해 주신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동반자가 되어 주고 보살피며 붙들어 주기 위함이지, 남편이 강하다고 해서 주인이 되어 제가 매사에 그의 말을 듣고 눈치를 보며 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가정에서 저는 아내로서의 책임만 다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 저에게는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저만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남편과 아이들의 노예가 되어 굽실거리며 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나는 이 사람들, 즉 지금의 너희를 예정하고 택하였다. 성품, 자질, 모습, 체격, 출생 가정, 직업, 결혼 등 너의 모든 것, 심지어는 너의 머리카락 색깔, 피부색,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가 직접 안배했다. 네가 매일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내 손으로 안배한 것이며, 오늘날 너를 내 앞으로 인도한 것은 더더욱 내가 안배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히 앞으로 나아가라. 오늘날 내가 너에게 누리도록 한 것은 당연한 너의 몫으로, 내가 세상을 창조했을 때부터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4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말세에 태어나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제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예정이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자녀로 노후를 대비한다’,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 사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게 친자식이 있었다면,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식과 가정을 위해 계획하고 생각했을 것이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남편과 자녀에게 쏟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과 가정을 잘 지키고 자녀를 잘 돌보는 것을 제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하나님을 믿으러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고난을 겪는 환경을 마련해 주셔서 제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의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덕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제 팔자가 좋지 않다고 원망했지만, 이제는 저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고심을 깨달았고, 하나님께서 저를 말세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 단지 자녀를 낳고 기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책임이자 사명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지금의 반려자를 안배했기에 너는 그와 함께 생활할 수 있지만, 만약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 너에게 다른 누군가를 안배해도 너는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네 반려자는 너의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너의 종착지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네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고, 하나님만이 인류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다. 너는 부모를 떠나서도 생존하고 살아갈 수 있고, 배우자 없이도 당연히 전처럼 잘 살아갈 수 있다. 부모도 너의 종착지가 아니고, 배우자 역시 너의 종착지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저는 사람의 운명이 모두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으며, 남편이 저를 아무리 세심하게 보살펴 준다 해도 제 운명을 주관할 수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제 종착지의 안식처이자 진정한 의지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뇌혈전증으로 쓰러졌을 때, 남편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저를 치료했지만 결국 병을 고치지 못했던 것처럼, 그가 아무리 저를 돌봐 주어도 제 병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제 병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병이 나을 수 있을지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점차 병세가 호전되어 혼자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결혼과 가정을 내려놓고 본분을 이행하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더 편안하고 즐겁게, 자유롭고 해방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새가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데도 기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류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결혼과 가정을 잃고, 남편이라는 의지할 곳이 없어져 늙어서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늘 남편에게 얽매여 감히 예배에 나가지 못했고, 본분을 이행할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작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해 앞으로 나아갈 믿음도 생겼습니다.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뿐더러 저를 핍박하니, 그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더 이상 남편의 말에 순종하며 그의 노예로 살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교회에서 몇몇 형제자매가 체포되었고, 리더는 제게 편지로 자매 두 명을 접대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별 고민 없이 바로 좋다고 답장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접대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지도, 그가 저와 이혼할까 봐 무서워하지도 않으니 마음이 무척 해방되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에게서 돌아오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자매들은 본인들이 잠시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남편이 제 신앙 생활을 반대하긴 하지만, 경찰에 신고할 정도는 아니에요.” 남편은 집에 돌아와 자매들이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후, 남편은 사소한 일로 또 제게 화를 내며 윽박질렀습니다. “앞으로 너희 같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오지 못하게 할 줄 알아. 또 오면 내가 내쫓아 버릴 거야!” 예전에 남편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 남편 말을 듣는 바람에 본분을 잃고 인격과 존엄도 없이 살았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든든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건 불법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에요. 이 집에는 내 몫도 있으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남편은 제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남편이 저를 무시하거나 이혼을 요구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돌아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의 방해가 없으면 더 자유롭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더는 그의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자매들이 저희 집에 머물러도 남편은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가끔 다른 자매들이 오면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붙잡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이 올바로 서자 남편의 태도도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남편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습니다. 저는 가정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을 다하고, 나가야 할 예배는 나갔으며, 마음속으로 더는 남편에게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혼을 대하고 가족을 대하며 살아가니 힘들지도 않고 존엄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저는 남편도, 아들도, 그 어떤 가족도 제가 의지할 곳이 아니며, 제 남은 삶 동안 어떤 고난을 겪게 될지는 제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제가 기댈 유일한 분입니다. 지금 제가 결혼의 얽매임과 속박에서 벗어나 피조물의 본분을 조금이나마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서 이룬 결실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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